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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성
연혁
1986. 01. 01 : 안산시 승격 반월동사무소 개소
1991. 11. 18 : 반월동에서 분동 본오동으로 명칭변경
1994. 07. 15 : 본오동에서 본오1동으로 분동 개청
 
지역특성
도시와 농촌이 병존하는 도·농 복합지역으로 인구 4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택의 대부분이 다가구 밀집 주거지역으로
주민의 대부분이 2 ~ 3차 산업에 종사하며 원주민 일부만이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북쪽으로 본오2동, 서쪽으로 사이동과 접경을 이루는 가운데 안산시 동부에 위치한 교통 의 관문지이다.
또한 안산시 농경지의 70%(2.64㎢)를 차지하는 농업진흥지역인 본오뜰이 광대하게 펼쳐져있으며, 팔곡이동 반월도금단지에는
60여개의 중소기업이 입주하여 산업활동에 박차를 가 하고 있는 안산시 미래의 중심동이다.

이 외에도 사회복지시설, 반월 · 오목골 공원 등 주민의 휴식공간과 전국의 명문 동산고 등 교육시설 이 많아 자녀 양육 여건이
좋은 살기좋은 곳이다.
 
문화예술
최정걸장군묘
- 소 재 지 : 상록구 본오동 산92-7
- 시 대 : 조선시대
- 유적종류 : 민묘
- 유적개요 :
최정걸 장군의 묘소는 본오동 산92-7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높이 155cm, 너비520cm의 봉분 앞에 상석, 향로석과 망주석 2개가
있으며, 구묘갈과 신묘갈이 함께 있다.구묘갈은 비좌 위에 비신을 얹었으며 옥개석은 없다. 건립연대는 1930년이지만 비신의
풍화가 심 하다. 신묘갈은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옥개석을 얹었다. 최정걸(? ~ 1636)장군은 양주 최씨 시조
억(億)의 12세손으로 1637년 (인조15)에 가선대 부 병조참판을 추증 받았으며 충장(充壯)의 시호를 받은 충절공신(忠節功臣)이다
. 최정 걸 장군은 등무과 출신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까지 지낸 후 귀향하여 있던 중 1636년 (인조14)병조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 행궁으로 달려갔다. 장군은 조정의 판국을 보고 는 바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분전끝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인조는 이 뜻을 기리기 위해 가선대부병조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에 추증하여 향리에 예관을 보내어 후히 장사를 지내게
하고 정물을 내리며 사패(賜牌),봉록(俸祿)하였다.

2002『안산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최정걸장군기념비
- 소 재 지 : 상록구 본오동 산92-7
-시 대 : 조선시대
- 유적종류 : 선정비
- 유적개요 :
최정걸 장군 기념비는 최정걸 묘역 입구에 위치한다. 비신의 전면에는 세로로 충장공 최정걸장군 기념비
(忠壯公崔挺傑將軍紀念碑)라 쓰여 있다.
안산본오동회화나무
-소 재 지 : 상록구 본오동 1021
- 시 대 : 조선시대
- 유적종류 : 노거수
- 유적개요 :
안산시청에서 사동 방향으로 진행하여 해안로에 이르러서 좌회전하여 수원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본오아파트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의 충장길로 들어가 바로 우측의 좁은 소로로 들어가면 도로 좌측에 보호수가 보인다. 원줄기는 고사하고 둘레에서
줄기가 6개로 분산되어 생육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 나무는 마을 언덕의 풍치와 정자 목으로 유명했다.

2002『안산시의 역사와 문화유적』